소아과 '도미노 붕괴' 시작…서울 대형병원도 밤 10시면 환자 안 받아

입력 2022-12-12 18:24   수정 2022-12-20 19:52


‘15.9%.’

내년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다. 지난달 병원들은 의사 207명이 필요하다고 신청했지만 이달 확인된 지원자는 33명에 불과했다. 국내 대학병원 상당수가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가천대 길병원이 소아 입원 진료를 멈추기로 한 데엔 이런 배경이 있다. 의사들은 ‘소아과 도미노 붕괴’가 현실이 됐다고 진단했다.
올해 170여 명 떠나는데 지원은 33명뿐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올해 전공의 생활을 끝내는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 4년차는 170여 명이다. 전공의로도 불리는 인턴·레지던트는 의사 면허를 딴 뒤 대학병원 등에서 전문의가 되기 위해 수련받는 의사다. 이들은 병동을 다니며 입원 환자를 돌보고 응급실로 실려오는 환자를 위해 야간 당직도 선다.

레지던트 4년차의 빈자리를 메우겠다고 지원한 의사는 33명뿐이다. 당장 전국 병원 등에 소아과 소속 의사가 140명 줄어든다는 의미다. 레지던트 4년차가 병원을 떠나는 내년 3월이 되면 전국 의료기관에서 소아 진료 대란이 벌어질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외래 진료 보는 교수까지 당직
늦은 밤 아이들이 갈 수 있는 응급실도 점차 줄고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올해 10월부터 밤 10시 이후엔 만 16세 미만 소아·청소년 환자를 받지 않고 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전공의가 없어 교수까지 당직을 섰지만 밤에 당직을 선 뒤 낮에 외래 환자를 보는 시스템을 도저히 운영할 수 없었다”고 했다.

환자 진료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에서 야간 진료 소아과를 운영하는 한 의사는 지난주 열경련을 일으킨 아이를 대학병원에 보내기 위해 119를 불렀지만 진료 가능한 병원이 없다는 통보를 들었다. 심한 열경련이 30분 넘게 지속되면 사망할 수도 있다. 수소문 끝에 겨우 서울대병원으로 환자를 보냈지만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이었다.

김지홍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이사장은 “전국 수련병원 중 교수가 당직을 서는 병원이 75%”라며 “진료, 교육, 연구를 하는 교수들이 당직까지 서자 교수직을 그만두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환자 줄어드는데 진료비까지 통제
이런 현상은 젊은 의사들이 소아청소년과에서 미래 비전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초저출산으로 돌볼 환자가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 신생아 숫자는 26만1000명이다. 2016년 40만6000명에서 5년 만에 36% 줄었다. 코로나19 탓에 소아청소년과 환자가 급감해 수익성도 악화했다.

생명을 살리는 데 꼭 필요한 필수 진료에 제값을 쳐주지 않는 현행 의료제도도 문제다. 건강보험 항목으로는 제값을 받지 못해 비급여 진료로 수익을 보전하지만 소아청소년과는 비급여 수익이 ‘제로’에 가깝다. 진료비를 모두 정부가 통제하고 있는 셈이다.

임현택 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최근 한 소아과 개원의가 ‘1년간 병원을 운영한 결과 한 달 수익이 25만원’이라고 토로했다”며 “5년간 폐업 신고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660여 곳으로 대부분 요양병원이나 통증클리닉, 피부미용클리닉 등으로 전업했다”고 했다.

의사들은 소아 환자 진료에 충분한 가산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일본도 10년 전 초저출산으로 소아청소년과 기피 현상을 겪었지만 정부가 보상 체계를 마련했다”며 “이후 의사들이 안정적으로 유입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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